한알의 밀이 되어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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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09:12
•본문│요 12:24~26
•찬송│213장, 449장, 459장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자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고난 주간은 예수님께서 로마군에 붙잡혀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이 땅에서 겪은 고난을 기억하는 한 주간입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을 예수님 공생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묵상하려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는 것은 상당히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언하며, 비슷한 맥락에서 베드로전서 4장 13절은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난을 한 알의 밀이 죽는 일로 비유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 이처럼 열매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죽음을 통해 고난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에서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알의 밀로 오셨습니다. 죄로 죽은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우리가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지 않은 자는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은 보기에는 매우 작지만 무한한 잠재력과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지금은 비록 한 알이지만, 땅에 떨어져 죽기만 한다면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들이 영생의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진리를, 한 알의 밀이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것은 얼마나 고독한 과정입니까? 내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고, 내가 깨어져야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고, 내가 약해져야 하나님이 더 강하게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 생명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은 땅에 묻혀 죽으면서 동시에 씨앗 속에 있는 생명을 살려냅니다. 작은 씨앗 속에 담겨있는 생명은 그 씨앗이 죽어야만 비로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죽음을 이기시고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 20~21)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은 부활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첫 열매는 이후에 수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이란 토지에서 한 알의 밀로 썩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참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한 알의 밀이 되어 생명을 풍성히 낳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