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것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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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09:08
•본문│행 14:1~7
•찬송│495장, 505장, 502장
교회 안에서 전도만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전도해야 한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말대로 선뜻 나서기란 어렵습니다. 전도를 나서기 전에 마음이 열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전도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 곧 복음을 전하는 가치에 대해서 말입니다.
첫째,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 진리를 아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하는 일입니다. 1절을 보면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고 증언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고니온’(Iconium)은 비옥한 고원지대에 형성된 도시인데, 오늘날 터키의 중요한 상업도시로서 ‘코냐’(Konya) 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바로 바울과 바나바는 이 지역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부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까? 1절을 다시 보면,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여기서 ‘허단한 무리’ 라는 말을 통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청년이나 노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상관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도란 어느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하는 일입니다.
둘째, 주를 힘입어 담대히 선포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치열한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에 반대하는 자들의 핍박 때문에 목숨마저 위태로웠습니다. 유대인과 관리들이 두 사도를 인신공격하면서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15절)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박해가 단순히 회당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만으로 끝나지 않고, 정치 지도자들까지 합세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났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고백한 것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세요.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그들은 주를 힘입어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전도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중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이 돌로 치며 생명을 위협해 와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6~7절 말씀을 보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피신한 ‘루스드라’(Lystra)는 이고니온 성에서 약 38km 남쪽에 위치한 전원도시입니다. 그리고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 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길리기아와 인접한 도시입니다. 이들은 왜 이곳으로 도망쳐왔습니까? 표면적으로는 핍박을 피해 온 것이지만, 이면에는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강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어떤 난관에도 멈추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였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절인 28장 31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우리도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끼고 기쁨을 얻어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랍니다.